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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상

애덤 스미스 '로마제국 멸망 후 농업과 상업'

by jian mom 2023. 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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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쇠퇴

로마제국 멸망 후 농업은 여러 이유로 쇠퇴의 길을 걸었다.

토지가 생존과 안락한 생활 수단으로 여겨지다가 권력과 보호의 수단으로 바뀌면서 토지를 잘 관리하는 것보다 더 많이 획득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영지의 규모가 곧 권력이었기 때문에 장자상속법, 한사상속제를 시행하면서 토지를 분할하지 않고 한 사람에게 토지 전체를 물려주었다. 그리하여 토지가 특정 가문에게 독점되었지만 그 토지를 잘 개량하려고 했던 대소유주는 거의 없었고 자기 영토를 방어하고 권위를 내세워 이웃을 지배하는 데 집중했다.

자산이 있다 하더라도 토지개량에 비용을 들이기보다는 토지를 새로 구입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대소유주가 하지 않는 개량을 그들 밑에서 토지를 사용하여 일하는 사람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었다. 

농노와 노예는 재산을 취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산물 증가를 위해서 토지 개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노예 경작자의 뒤를 이어 분익차지농이라는 소작인들이 나타났다. 토지소유자의 비용으로 농장을 경작한다는 것은 노예와 같았지만 차지농은 자유인으로서 재산을 취득할 수 있고 토지 생산물에 대해 일정 비율을 자기 몫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토지 생산물의 절반은 영주가 가져갔기 때문에 토지개량을 위해 얼마 되지 않는 자산을 사용하는 것은 별로 실리가 없었다. 

 

분익차지농 다음으로 토지소유자에게 일정 지대를 지불하고 자신의 자산으로 토지를 경작하는 차지농들이 등장했으나 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권한마저도 오랜 기간 매우 불안정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토지 상속인과 구매자로부터 임차인의 권리를 보장해 주는 편이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했지만 임차인들을 보장하는 기간은 늘어나지 않았다.

차지농들도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 외에도 주인에게 갖가지 노역을 제공해야 했다. 이 외 자작농에게 부과되는 공적인 노역 및 공공세금 등은 토지개량을 가로막는 방해 요소였다.

 

그리고 토지경작과 개량을 수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특별한 허가가 없이는 일반적으로 곡물 수출을 금지하고 국내 상업에서는 곡물뿐 아니라 거의 모든 농업생산물에 대해 규제하는 정책이었다. 

 

상업의 발달

로마제국 멸망 후 대도시 및 소도시에 사는 주민들이 농촌 주민들보다 혜택을 더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실제로 정말 가난했고 미천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도시 주민이 아무리 예속 상태에 놓였다고 해도 농촌의 토지사용자보다는 자유와 독립을 훨씬 일찍 얻은 것이 확실하다.  

 

도시 시민들은 징세위탁권이라는 권리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 권리가 영구적인 것이 되면서 중요한 특권들을 가지게 되었다. 중요한 특권들이란 딸을 자유로이 결혼시키고, 자녀에게 자기 소유를 물려주며, 유언으로 자기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권리였고 이 권리를 가짐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 이들은 국왕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귀족들을 함께 견제했다. 

 

개인의 자유와 안전이 농촌보다 도시에서 먼저 확립되었다. 자유가 보장되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은 성과를 누리면서 생계에 필요한 수준 이상을 목표로 경제 활동을 하려는 움직임도 도시에서 먼저 나타났다. 당시의 법률은 도시 거주자에게 매우 관대했으며 농촌 주민에게 행사하는 영주의 권위를 줄이려고 큰 노력을 했다. 그래서 농촌에서 열심히 일하여 얼마간의 자산을 얻은 이들은 피난처를 찾아 도시로 떠났다. 도시는 자산을 획득한 사람들에게 안전을 보장하는 유일한 성역이었다.

 

도시 거주자들은 생필품을 비롯하여 작업에 드는 전반적인 수단과 재료를 언제나 농촌에서 얻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해안이나 항해가 가능한 강가에 인접하여 사는 도시 주민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꼭 인근 농촌에서 얻을 필요는 없었다.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필요한 물품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역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부유한 국가로부터 개선된 제조품과 값비싼 사치품을 수입하였다. 유럽 대부분의 상업은 주로 가공되지 않은 생산물과 문명국가의 제조품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방식으로 무역 하면서 그러한 것들이 전혀 생산되지 않았던 나라에서 더 정교하고 개선된 제조품을 선호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런데 이런 선호 현상이 일반적으로 확산하면서 그 수요가 증가하자 운송비를 절약하려는 상인들이 자국에 똑같은 종류의 제조업을 설립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로마제국이 멸망한 후 서유럽 지역에서 원거리 판매를 위한 제조업이 처음으로 설립되었던 것 같다.

 

원거리 판매에 알맞은 제조업은 두 가지 방식으로 도입되었다. 하나는 동일한 종류의 제조품을 모방하고자 했던 특정 상인이나 사업가가 자신의 거대 자산을 투입하여 제조업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도입된 제조업은 외국산 재료를 사용해서 외국 제조업을 모방했다. 다른 방식은 제조업이 자연스럽게 성장한 경우다. 가난하고 미개한 나라에서도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 가내 공업 수준의 투박한 제조업이 점차 정교하게 되면서 발전한 경우다. 그런 제조업들은 대개 국내에서 생산하는 원료를 사용했다. 

 

전자의 방식은 외국무역에 의한 것이고 후자의 방식은 농업에 의한 것이다. 자국에서 생산하는 원료를 사용하는 제조업은 해안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해상운송이 불가능한 내륙지방에서 이루어진 것 같다. 자연적으로 비옥하고 경작이 쉬운 내륙지방에서는 생활에 필요한 양 이상으로 잉여물이 많이 생산된다. 이러한 풍부한 잉여물 때문에 식량이 값쌌다. 다른 곳에 비해 생필품과 편의품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가 인근에 정착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가공하지 않은 생산물의 잉여분을 강가나 원거리 시장으로 수송하는 비용을 절약함으로써 거기에 새로운 가치를 부가하였다. 노동자들은 이전보다 더 좋은 제품들을 만들어 경작자들과 교환하였다. 경작자들은 자산의 잉여 생산물을 더 좋은 값에 받고 필요한 편의품을 싸게 살 수 있었다. 그리하여 경작자들은 토지의 경작을 늘리고 더 개량하여 잉여 생산물을 증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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