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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상

중농주의

by jian mom 2023.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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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농주의 사상의 대두

 

프랑스 루이 14세 하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장 바티스트 콜베르에 의해서 수출진흥정책이 강력히 추진되었다. 그의 주된 목표는 국민들의 부를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왕의 권력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대내적으로는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나라를 통일하고자 하였다. 그는 한 지역에서는 기근이 다른 한 지역에서는 풍요가 공존하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 대외적으로는 무역의 양은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여 한 나라의 이득은 다른 곳에서의 상응하는 손실과 일치되는 것으로 여겼다. 즉 프랑스가 이득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손실이 수반되어야만 했다. 그리하여 그는 수출은 늘리고 수입은 줄이고자 했으며 또한 노임의 상승을 억제하여야만 공산품의 국제 경쟁력을 기를 수 있다는 견지에서 농업의 희생 위에서 저곡가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였으며 일부 국내 산업에 대하여 특혜와 두터운 보호 육성책을 국제수지개선이라는 국가적 명분으로 삼고 강력히 추진하였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심각한 금융과 경제문제에 시달렸지만 콜베르의 정책은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고, 루이 14세와 그 후계자들에 의한 군사적 지출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다. 

그 결과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은 농업은 피폐 일로에 있었고 경작자는 빈곤에 허덕였다. 

 

이에 중상주의 정책을 반대하며 당시 정치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농주의 사상이 나타났다.  

중농주의는 중상주의가 외국무역을 강조하면서 농업의 희생과 쇠퇴를 가져왔다고 비판하고 농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질서의 형성을 도모하고자 했다.

중농주의는 사회의 인구를 생산적 계급(농민), 불생산적 계급, 그리고 1/10세 취득자(귀족이나 성직자)의 3개로 나누고 사회의 부는 생산적 계급에 의해 창출된다고 보았다. 중농주의자들은 부의 유일한 원천은 자연, 즉 토지에 있으며 부의 증가는 토지로부터 생산된 순생산물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고 했다. 따라서 부의 유일한 원천인 토지에서 열심히 일하여 순생산물을 생산하는 농업만이 생산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리고 상업이나 공업은 새로운 순생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결국 농업에 투하된 자본에 대한 자연의 혜택으로써 일정한 잉여가 순수입으로서 생산물에 더해지게 된다. 그 때문에 농업에 투하된 자본만이 생산적이라고 했다. 따라서 한 나라의 경제에서는 이렇게 생산적인 농업이 위기에 빠지거나 황폐해지지 않고 매년 자연의 혜택을 흡수하면서 재생산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사회의 세 계급 중 생산계급인 농민은 생산물을 증가시키고 그 증가분의 얼마를 대금으로 지주계급에 지대로 납부한다. 지주는 농민으로부터 받은 지대로 농민에게 식료품을 구입하고 상공업자에게는 공업제품을 구입하여 생활한다. 농민은 상공업자로부터 일상생활에 필요한 공업제품이나 농기구 등을 구입한다.  이처럼 세 계급은 각각 필요한 것을 수중에 넣어 사용하면서 1년의 경제생활을 마친다.

다음 해에도 지대의 납입으로부터 경제활동이 시작되고 화폐와 농산물과 공업제품의 교환 및 유통이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중농주의 이론적 토대인 「경제표」에 대하여

 

중농주의는 최초로 조직된 경제학자 집단이었다. 중농주의는 프랑수아 케네와 빅토르 리케티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중농주의 사상을 논의하고 1762년 ~ 1772년 「에페메리데」라는 저널을 통해 자신들의 사상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들의 1763년에 발간된 「농사철학」은 중농주의 경제학의 교본 격이었다. 

 

케네는 경제학자 이전에 외과 의사였다. 그의 의학적 지식 배경이 경제학 관점에 영향을 미쳤는데 케네는 사회의 병리를 분석하고 그것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고자 했다. 

케네는 프랑스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업경영의 개혁과 육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1758년 발간된 「경제표」가 중농주의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경제표」는 주어진 기간에 생산 주체 사이 순환의 결과를 도식화하였다. 농업을 중심으로 하는 경제에서 생산, 분배, 교환, 소비의 과정을 나타냈다. 사회계급을 생산계급과 불생산계급, 지주계급으로 나누고 생산계급에 의해 생산된 사회의 부가 불생산계급 및 지주에게 분배되고 이어 다시 생산계급으로 돌아오는 경제사회의 이 순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경로를 점선으로 열결했는데 케네는 이것을 지그재그라고 했다. 이는 양적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경제 모델이다. 경제 순환은 화폐의 흐름으로 표시되지만 화폐의 흐름은 실물에 의해 결정된다.

 

연간 부의 생산을 소득의 흐름으로 포착하려는 이 「경제표」에서 케네는 특히 생산계급인 농민에게 초점을 두었다. 그는 농업만이 생산적이라고 규정하면서 이들이 투입하는 자본에 의하여 총생산(재생산)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중농주의의 기본적인 사상은 부의 대표적인 형태는 무엇보다 농산물이고 이것을 만들어내는 근원은 자연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농업이라는 것이다.  케네의 「경제표」에서는 제조업을 비생산적 그룹으로 규정하고 이 그룹에서는 순생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고 이론을 전개한 부분에서는 중농주의가 근대 제조업의 생산성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받지만 고적적인 가격이론과 경제의 흐름을 화폐적 언어를 통하여 접근하려고 한 점에 있어서는 경제학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마지막으로 토지의 국부의 원천으로 간주한 케네 등의 중농학파는 농업에 입각한 자유방임을 주장했다. 중농주의자들은 최소한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정부의 불간섭, 규제철폐만이 경제를 활성화하는 최선의 정책임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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