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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상

프랑스 미시시피 버블

by jian mom 2023.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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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일어난 미시시피 버블은 17~18세기 근대 유럽에서 일어난 3대 버블 중 하나이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프랑스에 화폐 전문가가 나타나다

1643년 루이 14세는 다섯살에 왕위에 올랐다. 1661년 3월 그동안 섭정을 해오던 마자랭이 사망한 후 루이 14세는 자신이 직접 국정을 관장하고, 유능한 재무대신 콜베르가 중상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1683년 콜베르 사망 후 낭트칙령 폐지, 계속되는 전쟁, 베르사유 궁전을 짓는 데 돈을 낭비하면서 재정은 계속 나빠졌다. 루이 14세가 1715년 사망했을 때 프랑스 정부의 채무는 30억 리브르에 달했다. 그 당시 프랑스의 재정수지는 300만 리브르 정도였다.

 

루이 14세를 이어 그의 증손자인 루이 15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당시 루이 15세의 나이도 다섯살이었다. 오를레앙 공 필리프가 루이 15세를 대리하여 국가의 통치권을 맡았지만 계속되는 전쟁으로 국가 재정난은 심각해졌다. 이때 스코틀랜드 출신 존 로가 그 앞에 나타났다. 에든버러의 금세공업자 아들로 태어난 존 로는 돈을 교환수단으로 인식했다. 그는 금으로 교환할 수 없는 화폐를 사용하면 경제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716년 프랑스에 존 로가 제안한 은행 - 방크 제너럴 - 이 설립된다. 세금은 존  로가 설립한 은행이 발행한 지폐로만 납부하도록 했다. 프랑스 최초의 은행, 방크 제너럴이 발행한 지폐는 초기에 대성공을 거뒀다. 경제가 잘 돌아가는 데 놀란 필리프는 존 로가 새로 제시한 미시시피회사 설립과 운영계획도 그대로 승인했다. 그리고 1719년 방크 제너럴은 일반은행에서 왕립 은행으로 변모한다.

 

미시시피 회사는 프랑스가 보유한 미국 루이지애나에 식민지 개발권과 교역권을 독점 소유했다. 당시 프랑스 동인도회사와 중국회사, 화폐 주조업, 조세 징수대리업, 중앙은행까지도 미시시피의 지배구조 아래 있었다. 미시시피 회사는 1719년 8월 15억 리브르에 달하는 프랑스 정부의 채무를 모두 인수했다. 

 

존 로는 청약할 때 필요한 증거금 비율을 낮춰 투자자들이 청약대금의 일부만 예치해도 주식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자신의 은행을 통해 엄청난 양의 은행권을 발행해 미시시피 주식을 사려는 사람들에게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었다. 즉 적은 돈으로 많은 주식을 살 수 있게 해 일반인들까지도 청약에 뛰어들게 만들어 주식 수요를 증가시켰다. 반면 주식은 담보로 잡혀있어 시중에 유통되는 물량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 결과로 미시시피 주가는 급등했다. 1718년 액면가 300리브르로 시작한 주가가 1719년에는 2만 리브르까지 치솟았다.

 

존 로의 사업은 프랑스 역사상 보기 힘든 투기로 이어졌다. 이 여파로 수많은 졸부가 생겨났고 유럽 각지에서 일확천금을 노린 투자자들이 프랑스 주식거래소가 있는 파리의 켕캉푸아 거리로 몰려왔다. 투기 열풍은 전 유럽으로 확산하여갔다. 미시시피 주식으로 한몫 챙긴 사람들로 인해 스위스 제네바의 집값이 오를 정도였다. 

 

프랑스 파리의 카페와 레스토랑 주인들은 미시시피의 주식거래인으로 자처하며 즉석에서 주식거래판을 벌이기도 했다. 사무실이 따로 없었던 브로커들 앞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대장간의 숙련공들은 자신들의 마구간이나 의자들을 브로커들에게 빌려주어 본업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렸다.

 

4,000만 리브르를 벌었다는 굴뚝 청소부에서 단 6주 만에 3,000만 리브르를 모았다는 웨이터까지...미시시피 주식투기로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평범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준비자산도 없이 주식 물량을 너무 많이 공급하고 덩달아 불환지폐까지 남발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주가가 급등하면서 물가가 같이 올랐다. 1719년 최고조에 달했던 투기 열풍은 오래가지 못했다. 1720년 1월 콩티 왕자가 보유하고 있는 미시시피 회사 지분을 팔아 금과 은으로 바꿨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소문에 동요된 사람들은 차츰 미시시피회사 주식과 존 로의 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을 부동산, 금화나 은화와 바꾸기 시작했다. 교환을 요구할 경우 내줄 금이나 은이 지폐 발행고의 2퍼센트에 불과했다.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도 소용이 없자 방크 제너럴은 예금지급을 거절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1720년 6월 수백 리브르까지 떨어진 미시시피회사 주식과 인플레이션에 시달린 시민들이 들고일어나자 모든 책임은 존 로에게 돌아갔고 존 로는 재무총감에서 해임되고 프랑스를 떠나게 된다.

 

4년 동안 프랑스에 휘몰아쳤던 광풍은 재정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고 물가 폭등을 야기해 서민들을 곤궁으로 몰아넣었다.

버블이 꺼지면서 미시시피나 루이지애나에 대한 나쁜 인식이 퍼져 1803년 루이지애나를 미국에 팔아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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